“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 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책마을]

입력 2023-05-18 11:29   수정 2023-05-23 09:21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뇌를 ‘전자화된 두뇌’인 전뇌로 바꾼다. 네트워크에 연결해 즉각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량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독립적인 사고도 힘들어진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그저 시류에 편승하곤 한다. 작품 안에서 이런 현상은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stand alone complex)’라 불린다.

꼭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옛날에도 그랬다.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뒤 씽크탱크인 포퓰리스를 세워 활동하고 있는 토드 로즈가 펴낸 <집단 착각>이 말하는 바다. ‘집단 착각’이라고 새로운 말을 붙였지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집단의 시류에 휩쓸리는 것이 모두 집단 착각에 해당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도 그런 예다.

책은 원인에 대해 많은 설명을 곁들인다. 저자는 인간에게 모방하고 순응하는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의 생각과 시선에 따라 행동을 바꾼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지만, 다수가 좋다고 하면 괜찮은 듯한 착각이 들거나,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기 어렵다.

인간의 뇌가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모든 것을 꼼꼼하게 따진다면 금방 피로해져서 정작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건 에너지 효율적인 정보 처리 방식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드는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도 원인으로 꼽힌다.

책은 많은 사례와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2010년 8월 콩고민주공화국 하늘을 날던 쌍발 프로펠러기가 20명의 승객을 태우고 가다 추락했다. 살아있는 악어가 나타난 까닭이었다. 겁에 질린 승무원이 비행기 앞으로 뛰어가자 승객들들이 영문도 모르고 뒤쫓았다. 비행기는 균형을 잃고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집단 착각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친 용기 있는 꼬마처럼 말이다. ‘왜’라고 질문해야 하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문가의 의견이라도 무조건 믿어선 안 된다.

책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만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보다 딱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극복을 위한 방안도 평이하다. 책에도 나오지만 아무리 주체적인 인간이라도 주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인터넷에 있는 글을 읽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집단적 사고를 체화한다.

이는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에 가깝다. 정보를 얻기 위해선 소통하고 네트워크에 접속해야 하는데, 거기엔 잘못된 정보와 관점을 습득하게 될 위험이 내재해 있다. 그렇다고 ‘자연인’처럼 단절된 삶을 산다면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엄청난 극기가 필요하다. 이미 뇌가 24시간 네트워크에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인 세상에서, 연결을 잠시 끊고 혼자서 생각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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